1. 한국 의료는 세계적 자랑거리
1-1. 한국 의료는 싸다
1-2. 한국 의료는 잘 고친다
1-3. 국가적 보물인 의료를 소중히 다루어야
2. 싸고 잘 고치는 이유 - 의사당 환자 수 많음
2-1. 한국 의료는 박리다매
2-2. 가난한 인도인의 시력을 찾아준 아라빈드 안과 병원
3. 인구당 의사 수 증가는 국민에게 나쁘다
3-1. ‘인구당 의사수’는 잘못된 목표
3-2. 의사수 늘이면 값은 오르고, 치료율은 떨어질 것
3-3. (참고) 공급이 는다고 가격이 꼭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4. '의사 부족'은 잘못된 진단
4-1. 한국 의료의 접근성은 세계 최고
4-2. 지리적인 접근성도 세계 최고
4-3. 미래에도 의사 수는 부족하지 않을 것
5. 문제는 필수 의료 기피
소개
경제학의 기초를 아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한다. “의사의 공급이 늘면 수요 공급 원리에 의해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까?”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경우는 완전경쟁 시장이다. 경제학에서 제일 처음 배우는 시장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완전 경쟁은 현대 사회에서는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특수한 시장이다.
완전 경쟁 시장은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한다.
많은 숫자의 수요자와 공급자. 어느 한 참여자가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동일한 상품. 상품이 같으므로 수요자는 공급자가 누구인지 신경쓰지 않는다.
자유로운 진입과 퇴장. 쉽게 시장에 들어올 수 있고 나갈 수 있다.
완전한 지식 보유. 모든 시장 참여자들은 상품, 가격, 기타 시장의 상태에 대하여 완전한 정보를 갖고 있다.
가격 수용자. 모든 참여자들은 시장 가격을 받아들인다.
옛날에는 이런 모습에 가까운 시장이 있었다. 경제학이 정립되기 시작한 18세기-19세기에는 농산물, 석탄, 철, 섬유 등 제품간 차별화가 적은 원자재류가 중심이었다. 그런 시장은 가격 경쟁이 경쟁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점점 그렇지 않은 시장이 늘어났다. 지금 할인점에 가보거나 쿠팡에 들어가보라. 양말, 라면 같이 단순한 제품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옛날에는 무게로 팔던 소금이나 밀가루도 이제는 성분, 제조 방법, 브랜드 등 차별화를 한다. 가격을 단순 비교하기도 어렵고, 가격만으로 구매 결정을 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래서 이제는 공급이 증가해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시장이 많다. 두가지 시장을 보자.
서울의 음식점 수는 2007년에서 2017년까지 8.1% 늘었다. 같은 기간에 서울의 인구는 2.8% 감소했다. 10년동안 공급은 늘고 수요는 줄었으므로, 가격은 떨어졌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외식 가격이 올랐음은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데이터가 있는 기간을 보자. 서울 인구는 2015년 1029만 명에서 2017년 1012만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에 음식점 수는 76,804개에서 80,732개로 늘었다. 하지만 그 기간에 외식 물가는 5% 올랐다. 같은 기간에 2.8% 오른 소비자 물가보다 더 올랐다.
왜 그럴까? 외식업을 하는 사람들도 ‘박리다매’ 전략을 쓸 수 있다. 제일 싼 집이 되면 고객들이 많아져서, 주문당 이익은 줄지만 주문이 많아져서 전체적으로는 이익이 늘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당은 박리다매 전략을 쓰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다.
요즘 사람들은 가격 낮다고 더 오지 않는다.
고객이 많아지더라도, 일이 너무 많아지면 그것도 부담이다.
지금도 별로 안 남는데, 내리면 도저히 타산을 맞출 수 없을 것 같다.
올만한 고객에게 제 값 받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박리다매를 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우리 나라의 책 시장도 현대의 시장을 잘 보여준다.
한국 사람들은 점점 책을 읽지 않는다. 1년간 책을 한권 이상 읽은 성인의 비율은 2011년 73.7%에서 2021년 46.9%가 되었다. 전자책을 읽는 사람들이 늘고는 있지만, 종이책 독서의 감소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1인당 평균 독서량도 감소했다.
공급자는 늘었다. 2009년에 35,191개였던 출판사 수는 2019년에 70,416개로 두배가 되었다. 도서 발행 종수도 2009년 42,191종에서 2019년 65,432종으로 늘어났다.
수요는 줄었고 공급은 늘었으니, 책 가격은 떨어졌을까?
아니다. 책 가격은 오히려 올랐다. 도서의 평균 가격은 2009년 12,829원에서 2019년 16,486원이 되었다. 2010년에서 2015년까지 전체 물가가 약 10% 오를 동안, 도서 가격은 약 25% 올랐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추측할 수는 있다. 책을 사는 사람들이 줄어드니까, 출판사들은 책을 사는 사람들에게 더 비싸게 파는 전략을 쓰는 것이다. 그들은 책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므로 책값이 조금 올라도 책을 살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줄어든 수요를 가격 인상으로 만회하는 것이다. 종이값 등 원재료 가격의 상승 등 외부적 요인도 있겠지만, 책값을 올리면 책이 안 팔릴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어떻게든 책값을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 경제에서 공급이 는다고 가격이 떨어질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외식이나 책 시장처럼 규제가 적은 시장에서도 공급이 늘었지만 가격은 오히려 올랐다. 의료 시장은 더더욱 완전 경쟁과 거리가 먼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