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반대 이유

1. 한국 의료는 세계적 자랑거리

1-1. 한국 의료는 싸다

1-2. 한국 의료는 잘 고친다

1-3. 국가적 보물인 의료를 소중히 다루어야

2. 싸고 잘 고치는 이유 - 의사당 환자 수 많음

2-1. 한국 의료는 박리다매

2-2. 가난한 인도인의 시력을 찾아준 아라빈드 안과 병원

3. 인구당 의사 수 증가는 국민에게 나쁘다

3-1. ‘인구당 의사수’는 잘못된 목표

3-2. 의사수 늘이면 값은 오르고, 치료율은 떨어질 것

3-3. (참고) 공급이 는다고 가격이 꼭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4. '의사 부족'은 잘못된 진단

4-1. 한국 의료의 접근성은 세계 최고

4-2. 지리적인 접근성도 세계 최고

4-3. 미래에도 의사 수는 부족하지 않을 것

5. 문제는 필수 의료 기피

소개

2-1. 한국 의료는 박리다매

한국 의료가 저렴한 이유 - 의사당 환자수 많음

한국 의료는 어떻게 낮은 가격과 높은 치료율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의사당 진료 건수가 많은 것이다.

모든 사업의 매출은 ‘가격 x 판매량’이다. 매출을 올리려면 가격을 올리거나 판매량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병원들은 가격을 올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 국민건강보험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이 사용하는 건강보험은 의료 서비스의 가격을 통제하는 기능도 한다. 대부분의 진료에 대해서 사실상 국가가 가격을 정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급여 항목의 가격, 즉 의료수가를 정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를 급여, 적용되지 않는 진료를 비급여 항목이라고 한다. 동네 병원이 “이것도 추가로 하시면 좋아요”라고 하는 것은 대개 비급여라고 보면 될 것이다. 비급여 항목은 가격을 병원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2021년에 종합병원의 진료 수입에서 비급여의 비중은 8.2%인데, 동네병원에서는 25%였다.)

정부는 의료수가(가격)를 대개 낮게 책정한다. 의사들은 불만이 많지만, 국민들을 위하여 그렇게 한다.

그렇다면 병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다.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이 더 있긴 하다. 가격 통제를 받지 않는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하는 것이다. 많은 동네병원들이 실제로 그쪽으로 가고 있다. 인구당 의사가 많아질수록 이 현상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2019년에 평균적으로 의사 1명이 6989명을 진료하였다. 이는 OECD 평균의 거의 3.3배고, 한국 다음으로 많은 터키나 일본의 5000명 수준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수치였다.

개별 환자에게 받는 진료비는 매우 저렴한 대신에, 의사 1명당 많은 환자를 진료하여 매출을 높인다. 이게 한국 병원들의 기본적인 사업 모형이다. 낮은 가격에 많은 환자를 진료하기. 한마디로 박리다매다.

한국 의료가 잘 고치는 이유 - 의사당 환자수 많음

언론에서 한국 의료의 문제점으로 의사가 한명의 환자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자주 본다. 한명의 환자에게 선진국은 많은 시간을 들이는데,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의사 선생님과 몇분 얘기하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 한명 한명에게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성껏 시간을 들이면 더 진료를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에 가깝다. 의사 한명이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할수록 진료의 품질도 올라간다. 어떻게?

사람은 숙련을 통하여 일을 더 잘 하게 된다. 같은 일을 많이 해볼수록 생산성은 올라가고, 품질도 좋아진다. 노련한 일식당 주방장이 한 주먹을 쥐면 초밥 하나에 적당한 밥이 담기는 것이 그런 것이다.

환자를 많이 보는 의사가 환자를 적게 보는 의사보다 치료 성과가 좋다는 것은 검증된 사실이다. 같은 수술을 1번했을 때보다 10번 했을 때 더 잘하게 되고, 100번 해보았을 때 더 잘 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혁신이다. 일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포드는 한대씩 조립하던 그전의 체제와 달리 세분화된 연속 공정을 도입하였다. 공장 근로자가 2년치 월급을 하나도 안 쓰고 모아도 살 수 없던 자동차를 4달치 월급 가격으로 떨어뜨렸다. 같은 인원수가 훨씬 많은 자동차를 만들 수 있게 되어서 가능해진 것이었다. 즉, 포드의 대량생산은 생산성 혁신이었다.

우리나라 큰 병원들은 기계처럼 돌아간다. 업무 프로세스의 개선, 기술의 활용 등으로 생산성을 높여온 결과다. 가격을 높이는 것은 어렵기에,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생산성 혁신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짧게 여러 번 보는 것이 병의 진단에 유리하다

병이 의심되어 병원을 찾은 환자 입장에선 의사가 시간을 들여 자세히 진단해주기를 바랄 수 있다. 하지만 박리다매 체제는 진료 시간도 짧을 수밖에 없다. 환자를 길게 본다면 많은 환자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환자도 의사를 자주 만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길게 한번 진찰받는 것과, 짧게 여러 번 진찰받는 것 중에 뭐가 더 좋을까?

모든 경우에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짧게 여러 번 보는 것이 병을 발견하는 데에는 더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어느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옮긴다.

대부분의 질병은 “진행” 하며, 그 진행과정에서 진단됩니다. 애매한 증상은 있었지만 오늘 1시간 동안 진료해도 발견되지 않았던 질환은 3일 후에 다른 병원에서 확진될 수 있습니다. 오늘, 내일, 그리고 일주일 후 세 번에 걸쳐 받을 수 있는 3분짜리 전문의 진료의 의료적 가치는 한 달 뒤 예약가능한 1시간 짜리 전문의 진료의 의료적 가치보다 두 배, 열 배, 경우에 따라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